[사실은 이렇다] 중국 만두는 속도 없는 찐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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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이렇다] 중국 만두는 속도 없는 찐빵!!
  • 김진우 기자
  • 승인 2020.05.0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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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만두’와 중국의 ‘만두’는 전혀 다른 음식

우리가 즐겨 먹는 만두(饅頭)는 밀가루를 반죽해 눌러 펴 얇게 만든 만두피 속에 야채와 고기 등의 소(음식)를 넣고 빚어 찌거나 삶거나 튀긴 음식이다. 우리는 통칭해 만두라 부르지만 사실은 많은 종류가 있다. 다양한 모양과 색, 맛을 지녔다. 또 만두피, 만두속의 재료에 따라서 맛이 다르며 같은 재료의 만두라도 조리법에 따라 또 한 번 맛이 변한다.


만두의 문화를 공유하는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등 만두에 대한 국가별 정의와 명칭은 참으로 많다. 오래 전부터 중국에서 요리법이 각국으로 전해져 독창적인 발전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 ‘만두’와 중국의 ‘만두’는 전혀 다른 음식이 됐다.

중화요리의 ‘딤섬(点心 혹은 點心)’ 개념에서 이러한 요리를 많이 먹기 때문에 서구권 등의 외국에서는 ‘딤섬=만두류 음식을 총칭하는 말’ 정도로 굳어진 이유도 있다. 하지만 딤섬은 특정 요리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아침과 저녁 사이에 간단한 음식을 먹는 행위를 말한다. 즉, 간식거리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말의 점심과 유래나 한자가 같다. 이글에서는 우리나라가 사용하는 만두란 개념을 중심으로 용어를 사용한다.

만두 기원은 삼국지다?

 

출처: YTN
출처: YTN

한나라 말기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에 만두의 기원이 나온다. 중국의 삼국시대, 촉나라의 승상 제갈공명이 북벌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남쪽의 안정이 필요함을 알고 있었다. 남만(南蠻)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도중, 여수(濾水)라는 곳에 이르자 갑자기 하늘이 까맣게 바뀌고 폭풍우가 몰아쳤다.

제갈공명은 모든 병사가 두려움에 떠는 것을 보고 사기를 진작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현지 추장이 제갈공명에게 말했다. 추장은 ‘남만에서는 사람을 죽여 그 머리를 제물로 제사를 지내면 신이 노여움을 풀고 도와준다.’고 말하며 남만 포로의 머리를 베어 제사를 지낼 것을 권했다. 하지만 공명은 포로를 죽일 수 없다고 거절했다. 대신 양고기와 돼지고기로 소를 만들고 밀가루로 싸서 사람 머리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것으로 신에게 제사를 지내자 하늘이 가라앉았다고 한다. 송(宋)의 신종(神宗)때 나온 책 ‘사물기원(事物紀原)’에 그 내용이 나온다.


이때 빚은 사람 머리 모양의 만두가 남만 정벌이 끝난 후 북방으로 전해져 오늘날의 만두가 됐다. 이 만두가 후일 고려로 전해져 한국에서도 즐겨 먹는 음식이 됐다. 만두라는 명칭은 삼국지의 유래처럼 원래 남만 오랑캐의 머리라는 뜻의 만두(蠻頭)지만 그 뜻이 너무 끔찍해 후일 만두(饅頭)라고 바뀌었다고 한다. 현재 중국에서 말하는 만두, 즉 만터우(饅頭)는 한국의 만두와는 다르다. 내용물이 없이 밀가루를 그냥 쪄낸 것이다.

현재 중국에서 말하는 만두, 즉 만터우(饅頭)는 한국의 만두와는 다르다. 내용물이 없이 밀가루를 그냥 쪄낸 것이다.
현재 중국에서 말하는 만두, 즉 만터우(饅頭)는 한국의 만두와는 다르다. 내용물이 없이 밀가루를 그냥 쪄낸 것이다.

중국 현지에서는 우리가 말하는 피가 부풀어 부드러운 왕만두는 바오쯔(包子), 피가 부풀지 않은 만두는 쟈오쯔(餃子·교자)라 한다. 요리 방식에 따라 찐만두는 쯩쟈오쯔(蒸餃子·증교자), 물만두는 수이쟈오쯔(水餃子·물교자), 군만두는 지엔쟈오쯔(煎餃子·전교자)라고 한다.

만두 기원은 동한 말 ‘거한교이탕’이다?

 

중국에 만두의 종류가 여러 가지 있듯이 ‘삼국지연의’에서만 유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교자(餃子)의 유래는 또 다르다. 교자는 2세기 무렵 동한(東漢)말 중국의 유명한 의사였던 장중경(張仲景)이 만들었다. 장사 태수에서 물러나 귀향할 때의 고사에서 유래됐다. 당시의 백성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두 귀가 모두 동상에 걸렸고 병들어 죽는 사람도 많았다. 동상으로 귀가 떨어져 나간 사람을 가엾게 여긴 장중경이 사람 귀 모양으로 만두를 빚은 후 뜨거운 물에 끓여 국물과 함께 나눠 주었다. 만두를 먹고 속이 따뜻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동상에 걸리지 않고 겨울을 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이때 만든 국 이름이 '거한교이탕(祛寒嬌耳湯)'으로 문자 그대로 추위를 물리쳐 연약한 귀를 보호하는 국물이라는 뜻이다. 연약한 귀라는 뜻의 ‘嬌耳(교이)’가 귀 모양으로 빚다라는 뜻의 ‘餃餌(교이)’로 바뀌었다가 나중에 ‘餃子(교자)’로 굳어졌다. 중국어에서도 세 글자 모두 쟈오(jiao)로 발음된다.

만두가 이때에 생긴 이유는 한나라 말기에 밀가루 가공법, 즉 제분 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맷돌에다 소량의 밀을 갈아서 먹다가 당시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에서 물레방아를 이용해 대량으로 밀을 제분하는 기술이 도입됐다. 그 결과 만두를 비롯해 국수와 같은 다양한 분식이 만들어졌다. 수수나 기장 같은 거친 음식을 먹다가 곱게 빻은 밀가루 반죽에 고기를 싸서 익혀 먹으니 아픈 사람도 병이 낫고 죽은 사람도 다시 살아날 정도로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때 중국인에게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오래 살 수 있다는 미신마저 생겼다. 만두의 유래에 관한 두가지 유래는 아주 고대에 시초를 두고 있다. 고대의 만두도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변화했기에 중국의 현재 만두의 양태는 중국 근대시기인 청조말엽부터 유래 됐다고 보는 의견도 많다.

만두 기원 청나라 말이다?

 

중국 랴오닝성 천진의 명물「狗不理包子」
중국 랴오닝성 텐진의 명물「狗不理包子」

19세기 말 중국 허베이 성 무청현(지금은 천진시로 편입)의 꺼우부리(구부리·狗不理)란 별명을 갖은 고귀우란 소년이 바오쯔(包子)를 잘 빚어 소문이 자자했다. 꺼우부리란 개도 보지 않을 정도라는 뜻인데 아주 못생겼다는 뜻이라고 한다. 1890년대 초 원세개가 천진에서 육군을 훈련시키던 중 그가 만든 바오쯔를 먹었다. 그 맛에 탄복한 원세개는 당시 중국의 최고 권력자 서태후에게 진상을 했다. 서태후가 이것을 먹고 맛있다고 극찬을 해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해졌다는 설이 있다. 후일 고귀우의 별명을 그대로 따서 그가 빚은 바오쯔를 ‘구부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서울 강남에 천진구불리 체인점이 있다.


이렇게 ‘만두’에 관한 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자세히 보면 ‘만두’라는 것은 단순히 음식이 아닌 배품과 나눔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제갈공명의 이야기에서는 ‘교자’는 포로를 단순히 처벌이 아닌 용서로 바로 보았다. 장중경 이야기에서는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을 포용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나라 말의 ‘구부리’ 이야기에서는 하찮은 천민이라도 그의 숨은 실력을 인정하고 차별하지 않는 모습이 나타났다. 음식 속에 휴머니즘이 녹아 있는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중국 만두'에 대해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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